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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제주

제주 동쪽

지은이 한진오씨의 해설을 2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없어지게 될 '당'들을 둘러보는 하루 일정 기행이었다. 
(다행히 제2공항 건설이 쉽지 않게되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 이 책에 나와 있는 온평국민학교 해녀공로비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기가 막혔다. 해녀들의 삶이, 제주의 역사가 그랬고 그의 해설도 그랬다.  
지은이는 제주동쪽의 아름다운 자연, 그 자연속에 깃든 제주의 신화와 삶,
제주의 아픈 역사와 그 역사를 간직한 제주동쪽의 기막힌 풍경을 펼쳐놓는다. 
그는 본격적으로 제주의 현실과 신화를 '주술적사실주의'로 풀어낸
<모든 것의 처음, 신화>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못 끝냈다.)


<본문 중에서>
동촌 사람들은 '테우리'라는 목자를 마을마다 따로 두는 문화 ... 농지가 풍부한 서촌에서는 촐왓을 따로 장만하고 집집이 소를 길렀다. 
동부제 서가난 남장수 북단명
일출봉 전체를 요새화한다면서 2년에 걸쳐 무려 스물네 개의 진지동굴을 팠다. 
1949년 1월2일 ... 성산리와 이어진 오조리 주민 30여 명이 이곳(일출봉)으로 끌려와 목숨을 잃었다.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한 폭도'라는 게 이유였다. ... 고기잡이용으로 보관하던 다이너마이트 .... 무장대 출몰에 대비해 자체 경비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토벌대를 죽이려고 했다는 혐의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영등굿 ... 음력 2월 한 달 정도 제주섬을 찾아와 바다에는 전복씨, 소라씨, 미역씨 등을 뿌리고 한라산부터 오름과 들녘에 이른 곳에는 오곡의 씨앗을 뿌린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영등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곳이다. 
(우도의) 영명의숙을 나와 제주공립농업학교를 거친 강관순은 우도로 귀향해 모교의 교사가 되었다. ... 1932년 세화리오일장집회를 시작으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제주해녀항쟁에도 깊숙이 관여했는데 당시 해녀들이 한목소리로 불렀던 <해녀가>의 노랫말도 그가 옥중에서 지은 것이다. 
우도 최대의 모래 해변 하고수동해수욕장이다. 헤메랄드빛 산호 해변으로 우도팔경 중 하나인 서빈백사와 우도봉 기슭의 검멜레해변과 더불어 우도를 대표하는 해변이다. 
영등신은 한림읍 복덕개라는 바닷가로 들어와서 보름 동안 제주섬의 모든 마을을 돌며 봄바람에 해산물과 농산물의 씨앗을 날려 보낸 뒤 한라산 꽃놀이를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친다. 제주섬을 떠날 때는 우도의 진질깍이라는 해안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마지막으로 하룻밤을 지내는 곳이 바로 비양도의 돈짓당이다. 
제주 해녀들은 절대로 혼자서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 언제나 함께하는 '물벗'이 있다. ... 마을마다 수심이 얕은 바다를 '할망바당'과 '애기잠수바당'이라고 구획 짓고, 상군, 중군들은 출입하지 않는 것을 약속으로 한다. 
(1946년 온평리 국민학교 교사 짓는데) 해녀들은 물질해서 채취한 미역을 팔아 생긴 돈을 남김없이 내놓았다. .. 1950년 겨울, 학교에 화재가 발생해 목조건물이 전소 ... 온평리 해녀들은 이번에는 아예 마을 바당밧 한 구역을 '학교바당'으로 정해놓고 거기서 채취한 해산물의 판매대금을 무조건 학교를 위해 쓰기로 결정. ... 1960년 학교추진위원회가 주도해 (공로비같은) 기념비들을 건립 .. 1946년~1958년 학교바당을 텃밭 삼아 아낌없이 지원했던 해녀들이 공로는 쏙 빠진 채였다. ...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진 차별의 결과였다. ... 마을 안에 해녀들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일 년의 시간이 지난 뒤, .... 해녀공로비가 비석들 사이에 세워졌다. 
올레란 뭍의 고샅길과 비슷한데 큰길에서 여염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가짓길을 뜻한다. 개인의 사생활이 바깥으로 노출되는 것을 막을 요량으로 부메랑처럼 살짝 휘어져서 올레 어귀에서는 집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해묵은 속담 ... 제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 '말보다 못한 것이 제주 사람이라는 뜻으로 들려'
두럭산 ... 한라산 봉우리를 빼다 박았다. 마을 사람들은 두럭산을 영험한 곳으로 여겨 해녀들도 이 근처에서는 물질을 금하며 어부나 낚시꾼들도 이 바위에 절대 오르지 않는다. 
화전을 일궜다. 그 흔적을 나무를 쳐낸 밭이라고 해서 '친밧'이라고 불렀다. 
사냥을 업으로 삼는 이들 ... 제주 사투리로 '사농바치'라고 부른다. 개가죽으로 만든 코트와 털모자를 쓰고 제주 토종 사냥개를 대동해 동백동산은 물론 멀리 한라산 깊은 곳까지 누볐다. 
무거운 망사리에 ... 농담 삼아 한 마디 건넸었다. "삼춘, 잘도 기운 쎄다예" "야, 이놈의 새끼야. 나가 기운이 센 거냐. 팔자가 쎈 거지"
빗창(전복 따는 도구, 제주에서는 전복을 '빗'이라고 함)
애기잠수의 풀이 죽은 모습을 본 상군해녀들은 ... 자신이 잡은 전복이며 소라를 하나씩 덜어 애기잠수의 망사리를 묵직하게 해줬는데, 이렇게 서로를 배려해 해산물을 나눠주는 것을 개숙이라고 했다. 개숙개는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모여들어 애기잠수의 망사리를 채워준던 갯바위다. 
토끼섬 ... 여름이면 하얀 문주란으로 덮여 토끼처럼 보인다고 하여 섬이름이 붙여졌다. ... 아프리카가 원산지라는 꽃이 머나먼 항해를 거쳐 예까지 왔다니 놀랄 일이다. 
그물이 바위에 걸리면 ...찢어지기 때문 ... 바닷물 안팎이 고운 모래톱인 해변에서만 멸치잡이가 가능했는데, 고운 모래사장이 깔린 함덕리는 멸치잡이의 최적지였다. 
봉분의 만곡은 초가의 지붕을 닮기도 했고 완만한 오름의 능선을 닮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어느 토박이 예술가는 제주삼선이라고 불렀다. 초가의 선, 묏자리의 선, 오름의 선. 
'돌은 낭 의지 낭은 돌 의지'
밭에선 호박만 한 고구마가 풍성하게 자랐다. 누구도 그것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세화리라는 이름도 ᄀᆞ는곶(가는 숲이라는 뜻)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한자어다.
(다랑쉬굴) 1992년 4월2일, 천인공노할 학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제주지방경찰청은 남로당 세력의 아지트라고 왜곡했다. 제주도정은 유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유해들을 화장해 바다에 뿌렸버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포크레인을 동원해 다랑쉬굴 입구를 아예 봉쇄하기까지 했으니 돌아가신 영혼들과 유족들은 두 번째 죽음을 겪는 끔찍한 아픔을 당해야만 했다. 
'신과 함께'도 제주신화 중 하나인 차사본풀이와 문전본풀이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식산봉에 오르면 하늘에 뜬 보름달과 내수면 물결 위에 비친 달그림자가 그만이다. 오조리는 두 개의 달이 뜨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 오조라는 마을 이름에도 '나를 비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조정에 진상품을 ... 그중에서도 극악한 여섯 가지를 손꼽으며 ... 귤을 재배하는 과원을 비롯해 미역을 따는 잠녀, 전복을 잡는 포작, 국영 목마장의 말을 기르는 목자, 진상품을 운반하는 뱃사람인 격군, 관청의 땅을 경작하는 답한.
봄에 귤꽃이 피어나면 숫자를 헤아린 뒤 가을에 그만큼의 열매를 가져가겠노라고 으름장. ... 남몰래 귤나무 밑동을 파내어 뿌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고사시키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귤나무를 '진상나무'라고 불렀을까. 
동백은 뜨락의 관상수이며 바람 많은 섬의 방풍림이었다. ... 혼사 ... 잔칫집 들머리에 솔문을 세웠는데 ... 동백으로 장식했다. ... 굿판에서는 동백꽃을 생불꽃이라고 부르며 생명의 탄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 ... 씨앗은 몸을 살리는 음식이며 약재. 

<소감>
가시리는 ... 때를 기다린다는 뜻을 지난 '가시(加時)'를 마을 이름으로 붙인 ... 마을이다. 
--> 나는 가시리가 '시간을 더하는 마을'인 줄 알고 감탄한 적이 있다. 마을지명이 가시오름, 가스름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 확인이 필요할 듯. 다만 제주 지명 가운데 여럿은 제주어에 한자어 음을 가져다 붙인 경우(이두처럼)가 많아서 한문으로 된 제주지명을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제주 사투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제주 사람들은 제주어라고 쓴다. 독립적인 언어라고 인정하고 또 인정받고 있다. 

책의 구성은 아쉽다. 행정읍(면)을 기준으로 하든, 해안-중산간처럼 지형을 중심으로 하든, 아니면 내용을 중심으로(역사, 자연, 신화 등을 기준으로)하든 책의 순서, 동부 지역을 소개하는 순서가 분명하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차례 대로 읽는 사람은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