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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사진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옮긴이의 평가> 
- 표현의 의도, 에고의 개입 그리고 사물에 대한 판단이 모두 배제된 필립 퍼키스의 사진 세계
- 삶에 대한 직관과 안목을 가진, 그래서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본질적인 핵심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
-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끝없는 발견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슬픔The Sadness of Man> 서문
- 필립 퍼키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의미나 해석을 부여하는 일에 저항한다. 
- 필립 퍼키스는 프레임 안에 무엇을 포함시켜야 하고 무엇을 빼야 할지 고도로 의식하고 있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사건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고립된 존재들이다. 
- 퍼키스의 사진들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 스치는 시선 속에서 의식조차 할 수 없이 순간적인 삶에 대한 일별들을 포착해낼 수 있었던 것은, 고도의 집중으로 이루어진 응시 덕분이다. ... 퍼키스는 울타리, 벽, 철사 줄, 파손된 구조물, 비닐 천막들에 주목한다. 그의 관심은 이 대상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기 위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 퍼키스의 사진들은 틀에 박힌 반응을 거부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를 성찰로 이끈다. 그는 세상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어떤 이미지는 모호하다. 극적인 드라마는 제거되어 있다. 꾸준한 응시 속에서 그는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묘사할 뿐이다. 
- 형식상 비좁은 프레임 안에 갇혀 있지만 무한대로 확장하는 내면의 프레임 속에서 퍼키스는 그 불가피한 한계들을 이렇게 반향한다. 

<인터뷰 내용 정리>

고등학교 자퇴, 난독증, 사진가가 된 것은 이 장애 덕분.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결했어야. 

<미국인들The Americians> 초반을 보고 카메라 구입. .. 농업안정국(FSA)의 사진에 대한 말없는 반항.. FSA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미국의 어두운 실재 --> "예술은 늘 인간의 안쪽과 바깥쪽을 함께 지향합니다. 로버트 프랭크는 <미국인들?을 통해서 그의 내면과 더불어 1950년대 미국의 현실을 동시에 기록했습니다."
"예술은 교감 안에 존재합니다. 로버트 프랭크가 말했듯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술을 소통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지요.
완전히 언어를 초월합니다.
언어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요.
바로 그것입니다."

"사진 작업을 단순화시키려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습니다. ... 내 사진에서 실질적인 기술의 측면은 매우 냉정합니다. 노출을 조절하거나 현상을 할 때 가능하면 내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화를 통해 나를 표현하기 보다는 그저 원래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이 우울하고 어둡거나 입자가 거칠다면 실제로 그곳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죽음에 다가갈수록 내 자신은 줄여가려고 노력합니다. ... 안셀 애덤스가 내게 남긴 교훈입니다. 그는 해가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사진 속에 집어넣고자 했어요. 더 많은 필터, 더 복잡한 현상 과정, 더 강렬한 콘트라스트, 더 샤프하고 더 큰 인화, 더 큰 드라마 ... 그럴수록 그의 사진에 대한 나의 실망도 더 커져만 갔어요."
"필름이나 인화를 통해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내가 대상을 응시하는 과정 속에서 감정의 질을 있는 그대로 대상에 밀착시키고 싶습니다."
"인화의 80프로는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의 톤을 인식하면서 이뤄집니다."

"내가 만족스런 사진을 찍었을 때, 난 그저 내 몸이 일을 한다고 느낍니다. 왜냐면 어떤 무엇이 내 몸을 연장으로 삼아 스스로 표현되기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표현은 저절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상표현주의 시대로 돌아가 보지요. 당신은 단지 한 획만을 긋습니다. 그러면 그 획은 당신에게 다음 획을 어디에 그을 지 말해줍니다. 나의 사진 작업이 그러합니다. 먼저 셔터를 누릅니다. 자기 표현에 대한 생각은 부차적입니다. 자기 표현은 저절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단계는 사진을 아주 잘 찍었을 때, 내가 그것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일을 수행하는 매체라고 느끼는 정도에요. 내 작업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모르고 스스로 예술가라는 의식도 없어요. 오로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행위에 모든 의미와 모든 예술과 모든 감정들이 일어나도록 나를 맡기는 겁니다."
"서구에선 별로 통하지 않는 얘기에요. 서구에선 성공적인 일을 모두 자신의 전가로 돌리지요. 위대한 사진을 찍은 것은 나이고 위대한 생각을 가진 것도 나라고 생각합니다. ... 난 그저 몸으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내 임무는 그 일을 제대로 완수하는 것입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진다고 풍부한 감성이 담기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감정의 톤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선 디지털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제한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진은 90프로가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아이디오로 끝납니다. 사진가는 아이디어를 갖고 주제를 찾아 나서거나 아이디어를 완성해냅니다. 나머지 10프로의 사진들만이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가서 눈 앞에 있는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본 결과물이지요."
"거의 모든 것이 계획된다고 보면 됩니다. ...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도로시어 랭이 세상밖으로 나가 노동자와 전쟁과 가난한 사람들을 보여주던 사진의 시대는 베트남 전쟁으로 종지부를 찍었어요. 워커 에반스가 ... 알라바마로 가서 우리가 이전에 결코 알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게 해주었을 때만 해도 사진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와 만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린 방안에 앉아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지 못한 실제는 어디에도 없어요."
"젊은이들은 자신이 문제를 지적해냄으로써 사회 지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거에요. ... 순진한 청년이었던 나는 가난을 찍고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가난에 대해서 뭔가 행동을 취하리라고 기대했었죠. 정보의 부족으로 이 세상의 불행이 가속화 되는 것은 아니지요. 나는 정보 전달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 사진의 주제는 다른 방식으로 나옵니다. 세상에 대한 동정을 담아내기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어떤 질서를 찾아내려 합니다."
"그저 관찰자로서 편견을 버리고 최대한 대상을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과 저것의 가치는 정확히 같습니다. ... 대상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그저 시선을 끄는 것을 향해 셔터를 누릅니다. 그 다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결정하는 과정이 편집과 인화입니다."
"필름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의 기록입니다. 필름은 명백히 내가 보는 것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인화는 기억을 바깥으로 공표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사진 작업을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무한한 수수께끼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진은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아요. 사물들을 모아놓고 그것들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바라보는 거지요. 또 세상을 보면서, 그 안의 형태, 모양, 톤, 빛, 감정, 느낌과 표현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게임을 바라보면서, 끝없이 발견하는 매혹이지요."
"불현듯 무언가 다가오는 순간 셔터를 누릅니다.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법과도 같은 변화를 말합니다."
"난 다른 이들이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거나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워도 만일 내 사진과 어떤 공감이 가능하다면 스스로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울은 부정적인 느낌이에요. 슬픔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슬픔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슬픔을 통해서 초월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슬픔과 행보은 동전의 양면이지요."

 "단정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모든 학생들을 동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내가 성장을 도우려고 하는 학생들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며 생생하고 예민한 존재들로 여깁니다."
"학생들에게 내 임무는 그들의 작업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고 발전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그런 작업을 하지 말라는 얘긴 절대 하지 않습니다. ... 절대 학생들의 비전을 바꾸려고 시도해선 안됩니다. 그들의 방식이 틀렸다고 판단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린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린 모릅니다.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수업 첫날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어요. 아마추어란 단어는 프랑스어인 아모르amor에서 유래했으며 그야말로 애정으로 일하는 사람을 뜻하고 프로페셔널이란 단어는 프라스타튜트prosititute라는 단어에서 나왔으며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요. 물론 내가 지어낸 얘기에요."
"누군가 내 직업을 물었고 나는 예술가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가 '와 당신은 행운아군요. 돈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에게 내 머리 속은 늘 돈 걱정 뿐이라고 대답해줬어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강의를 하고 상업 사진을 찍습니다. ... 하지만 내 작업과 돈 버는 일을 혼동하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에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과 일을 섞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작업은 아마추어처럼 하고 돈 버는 일은 프로처럼 하세요.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자신의 예술로 돈을 벌려고 하는 작가들이 점점 더 형편없는 작업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누구나 위대한 사진가로 인정하는 스티글리츠는 평생 자신을 아마추어 사잔가라고 불렀지요"
대중적으로 성공할수록 작업이 더 형편없어지는 까닭? --> "단순합니다. 성공하면 계속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시각적인 하이쿠 --> "그렇습니다. 내 사진은 극단적으로 제한된 조건을 갖고 있지요. 늘 흑백만을 사용하며 거의 같은 사이즈로만 인화합니다. ... 인공 조명을 쓰지 않고 대형 카메라를 쓰지 않고 ... 변화와 다양함은 형식에 있기보다 내용에 있습니다. ... 스스로 부과하는 이런 한계 속에서 창출되는 변주들이 나를 흥미롭게 합니다."

(인터뷰책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뺀 건 아닌가? --> 프랑스 요리를 생각해보세요. 결코 손님을 배불리 먹이지 않습니다. 좀 부족한 듯 느껴지면 아쉬움이 들고 손님들은 다시 돌아옵니다. 반면 미국 요리는 배가 터질 만큼 많은 양으로 쉽게 질려버리지요. 

"기억은 여전히 내 사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 사진들이 찍힌 순간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 사진은 동결된 순간이란 생각이 있는데 그 순간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매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환상이라고 말했지요."
"윌리엄 클라인"의 농담은 대단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찍은 사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들로만 200장을 골라낸다고 치자, 평균 노출 시간이 125분의 1초라고 가정할 때, 그 200장의 시간을 다 합하면 2초가 된다.' 우리 평셩의 가장 훌륭한 순간들이 단 2초라는 얘기에요. 평생 찍은 사진 가운데 훌륭하다고 할만한 200장을 뽑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만."
"사진이란 현재의 순간이며 그 순간이 기억을 끌어낸다는 사실입니다. 기억을 끌어내올 수는 있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현재란 얘기지요. ... 까르띠에 브레송은 '사진이란 기억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다. 우리가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재의 순간일 뿐'이라고 했지요. 우린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진이란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매체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진가이므로 삶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정으로 삶이 경이롭기 때문이지요." 

20210719